현 프라이드 헤비급 챔피언이자 이종격투기 팬들로부터 ■세계최강의 사나이■ 라 불리는 에밀리아엔코 효도르. 최근엔 숙적 미르코 크로캅을 꺾으며 물오른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그 냉정하고 두려움마저 느껴지는 격투가가 어떻게 하여 여기까지 오게됬는지 간략하게 알아보자.




- 어린시절 -
  
효도르의 압도적이고,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시합을 보면, 그는 이미 코흘리개 시절 골목싸움을 했을 때부터 얼음파운딩을 날리고 했을 것 같지만, 놀랍게도 효도르는 어린시절 몹시 병악하고, 면역력이 약해 감기에 자주 걸리던 소년이였다.

"난 3살때까지 자주 입원할정도로 몸이 약한 아이였다. 어머니 손을 잡고 병원에 다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10살때부터 삼보연습을 시작했고, 이때부터 몸이 튼튼해지지 않았나 하고 생각된다."

'강해지고 싶다' 는 일념으로, 그리고 허약한 신체를 단련하기 위해 효도르는 삼보를 시작한다. 그러나, 초기엔 그다지 뛰어난 선수가 아니었고, 그저 지방의 무명선수 수준이었다. 그러다 18세에 군대에 입대하여 2년간 병역의 의무를 마치고 제대한 뒤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엄청난 노력파인 효도르는 훈련을 거듭하여 기량이 일취월장하게 되어 유도와 삼보대회에 다수 입상하고, 삼보 러시아 내셔널 챔피언이 되는 쾌거를 기록한다.
(스포츠 엘리트인 효도르는 돈을 받으며 운동을 했는데, 그 액수는 정말 짰다고 한다.)


- 프로로 전향 -

효도르가 프로로 전향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또한 효도르는 결혼을 상태였고, 지역선수로 인한 차별도 프로로 전향하게 한 요인이 되었다. 그러다 지인을 통해 보르크 한과 알게 되었고, 그의 팀에 들어가 프로가 되기위한 연습을 시작한다.

"보르크한에 대한 기억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에게서 급료를 받았을 때였고, 그 때 '이제부터 종합격투가로서 열심히 해보자!' 는 다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보르크한에게서 받은 급료가 나의 시작이라 할 수도 있겠다. (웃음)"

그러나, 보르크 한은 같은 고향 출신 선수들만 편애하고 효도르를 직접 지도한 적은 거의 없어, 효도르는 보르크 한으로부터 종합격투기에 관한 아주 기초적인 기술 외에는 배운 것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팀의 동료들, 이루힌 미샤, 라버저노프 아크메도 등과 함께 연습을 하며 실력이 늘었다고 한다.

"지금의 나는 한 명의 스승과 코치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어린시절부터 나를 수련시켜준 고향의 코치와 러시아 여러도시의 스승들과 네덜란드의 코치들등 여러 사람들에게서 기술을 배웠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어네스트 후스트도 나의 스승이라 불러도 괜찮을지 모르겠다(웃음) 그는 k-1을 4번이나 재패한 진정으로 존경받을 만한 챔피언이니까"

그러다, 효도르는 그 실력을 인정받아 불과 반년후에 링스에 진출한다. 보르크 한으로부터 일본에 링스란 프로 스포츠가 있다는 말을 듣게 되고, 큰 흥미를 느낀 효도르는 한번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되고, 얼마 뒤 출전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바바루와의 대결'

- 링스에서의 활약 -

"링스를 시작할 무렵 여러 신기술들을 익혀야만 했다. 복싱, 킥복싱, 거기다 유도와는 다른 그라운드 기술등, 이런 것들은 나에게 있어 미지의 세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좋고 싫음을 떠나, 새로운 것들을 배움으로서 나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기뻤다. 링스의 룰은 프라이드의 룰보단 덜거친 편이었지만, 당시의 나에겐 잘 맞았다. 하지만, 지금은 프라이드의 룰이 가장 잘 맞는다. 당시에 프라이드 룰로 했다면, 나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을 것이다."

데뷔전 상대를 12초만에 쓰러뜨린 효도르는 아부다비의 제왕 히카르도 아로나마저 쓰러뜨려 팬들과 관계자들을 경악시킨다.

"아로나와의 시합에서 이긴 것은 다행이었지만, 지금의 시합과 비교해보면 재미도 없었고, 어찌 보면 부끄럽기도 하다. 그때엔 초보적인 기술밖에 몰랐고, 실력도 미숙했으니..."

효도르는 링스시절 가장 인상깊었던 시합으로 헤나토 바바루와의 대결을 꼽는다. 당시 시합은 링스 헤비급 챔피언 결정전 토너먼트의 준결승전으로 팬들과 관계자들은 효도르는 바바루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팀 동료들조차 어렵지 않겠느냐며 우려할 정도였다. 그러나 예상을 뒤집고 승리를 거두었고 효도르는 자신의 실력을 증명했다는 사실에 몹시 기뻐했다. 그리고, 결승전 상대였던 보비 호프만은 기권을 하여 효도르는 부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당시 관계자들은 보비 호프만이 도망쳤다고 말한다.)


보비 호프만 - '미안 똥싸느라 늦었다'


그뒤, 효도르는 링스 무차별급 토너먼트에서도 우승을 거두며 2관왕에 오르지만, 그 날은 링스 최후의 날이었다.

"링스는 사라졌지만, 그것이 나에겐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프라이드란 멋진 대회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더욱 훌륭한 선수들과 싸울 기회가 생길거란 막연한 기대감도 들곤 했다. 물론, 링스에 있을때도 프라이드에서 싸우고 싶었지만, 당시 매니저가 링스이외의 대회에서 싸우는 걸 허락해주지 않아 프라이드의 무대엔 설 수 없었다. 그 때 다소 마찰이 있었다."

- 하리토노프와의 트러블 -

효도르와 하리토노프가 첫 대면을 한 때는 보르크한의 팀에서 연습을 하던 시절이였다. 자신보다 늦게 입단한 하리토노프에게 효도르는 종합격투기 기술을 가르친다. 당시 보르크한은 사업일 때문에 바쁜데다 모스크바로 이사까지 간 지경이라 자연스럽게 하리토노프는 효도르에게서 배우게 된다.(그렇다고 효도르는 자신이 하리토노프의 스승이란 말은 너무 과하다고 말한다)
알렉산더, 효도르, 세르게이, 이렇게 셋이서 같이 연습을 많이 하고, 사이도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효도르가 러사안탑팀에서 레드 데블로 팀을 옮기며 상황이 달라진다. 이적할 당시에 세르게이는 효도르에게 험담을 퍼붓고, 효도르가 이 말을 듣고 나서부터 둘의 우정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만다.
세르게이의 효도르에 대한 분노는 그의 인터뷰에서 잘 드러난다.

"효도르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선수가 선수를 비하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지만말이다. 말로 하기 보단, 링위에서 보여주는 게 낫겠다. 파이터라면 응당 그래야 하니까"



- 프라이드 참전, 최고의 자리에 오르다 -

링스의 챔피언이라는 자신감과 프라이드의 챔피언과 싸울때까지 절대 져서는 안된다는 긴장감을 가지고 효도르는 모든 시합을 승리로 이끈다. 그리고 당시의 종합격투기 수준을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돌풍을 일으킨 미노타우로 호드리고 노게이라를 완벽하게 제압하며(그럼에도 효도르는 노게이라와의 시합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프라이드 최강자의 자리에 오른다.

"이길수 있을지 어떨지는 몰랐지만, 벨트를 갖고 싶었고, 그에게 승리하기 위한 방법을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가능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착실하게 타이틀을 방어해온 효도르는 마침내 미르코 크로캅이란 최강의 적을 만나게 된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다 성사된 시합이니만큼 양 선수들 간의 신경전도 매서웠다.

"미르코는 강한 선수이지만, 최강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의 벨트를 가장 갖고 싶어하는 파이터라고 생각될 뿐이다."

효도르의 말처럼 프라이드의 벨트를 미치도록 갖고 싶어한 미르코는 유감스럽게도 3:0의 완패를 당하며, 최고의 명승부를 만들어냈다는 것에 위안을 삼을 수 밖에 없었다. 효도르를 이길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수로 꼽혀온 크로캅이 패배한 만큼, 앞으로 프라이드 헤비급의 전망은 효도르의 장기집권이 불을 보던 뻔한 일이다. 효도르를 이길 사나이중 한명으로 기대받던 조쉬바넷은 크로캅과의 대결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남은건 하리토노프와 ufc의 알롭스키 뿐인데, 이들마저도 효도르에겐 다소 미치지못한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효도르 또한 자신의 타이틀을 쉽게 넘겨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지금 나의 목표는 타이틀을 가능한 오래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열심히 연습을 해야한다."


동생과 한 컷